미국 거실 TV 속 이란 전쟁 뉴스에서 시작된 한 한국계 미국인의 기억. 미국-이란 관계의 숨겨진 역사, 1953년 모사데크 쿠데타부터 2026년 호르무즈 갈등까지 개인의 시선으로 되짚어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텔레비전 화면 속 존재다. 문제는 그 화면 너머에 실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목차
브레이킹 뉴스, 소파 끝에서 마주한 미지의 세계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거실 소파 끝에 걸터앉아 갓 배달된 피자를 베어 물던 어느 늦은 오후였다. 텔레비전 화면 하단에는 붉은색 굵은 글씨로 'BREAKING NEWS: Iran nuclear threat(이란 핵 위협)'이라는 자막이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뉴스 앵커의 굳은 표정과 배경으로 깔리는 날 선 사이렌 소리는, 따뜻한 피자 냄새가 번지는 거실의 평온한 공기와 기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저 멀리 중동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어린 나에게 그곳은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세트장처럼 비현실적이고 모래 먼지가 날리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화면 너머로 쉴 새 없이 전해지는 CNN 앵커들의 심각한 목소리는 내 마음속에 막연한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내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안전한 거실에서 처음으로 선명하게 마주한, 생생한 전쟁 이야기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이란이라는 나라가 세계 지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정확히 몰랐지만, 텔레비전이 뿜어내는 긴장감만큼은 피부에 고스란히 닿았다.
'악의 축'에서 트위터 혁명까지 — 쌓여가는 이란의 이미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성장하는 내내, '이란'이라는 단어는 늘 알 수 없는 적의와 긴장감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북한, 이라크와 함께 묶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이후, 그 단어는 어른들의 식탁 위 대화나 학교 선생님의 입을 통해 무의식 중에 스며들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진 대학 시절, 미국 언론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과 핵 위협을 연일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쏟아냈다. 특히 2007년 그가 뉴욕 콜럼비아 대학을 방문해 연설했던 날, 뉴스 화면 너머의 공기는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듯 살얼음판 같았다.
이어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대학원에서 밤을 새우며 논문을 쓰던 무렵에는 2009년 이란의 '녹색 운동(Green Movement)' 유혈 진압 사태가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이란은 가족이나 동기들 사이에서 '위험한 나라, 언제든 미국에 테러를 가할 수 있는 맹렬한 적성 국가'로 통용되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직장인이 된 2020년 1월,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근처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의 무인기 폭격에 암살당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쏟아지는 미국-이란 갈등 뉴스 속에서, 이란은 내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절대적인 '적'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첫 번째 균열 — 미국과 이란 관계의 숨겨진 팩트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역사 다큐멘터리와 국제정치학 관련 서적들은 그토록 견고했던 나의 미국 중심적 세계관에 처음으로 묵직한 균열을 냈다.
1953년, 이란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모사데크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축출당했다. 놀라운 것은 그 쿠데타(작전명 아약스, Operation AJAX)를 기획하고 자금을 댄 실질적인 배후가 바로 미국의 CIA와 영국의 MI6였다는 사실이다. 영국이 독점하던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하려 했다는 이유 하나로, 강대국들은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았던 것이다.
나를 더욱 서늘하게 만든 것은 1988년 여름의 비극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걸프 해역에 있던 미 해군의 순양함 빈센스(USS Vincennes)호가 이란 영해 근처에서 민간 여객기인 이란 항공 655편을 적의 전투기로 오인해 미사일로 격추했다. 이 참사로 66명의 어린아이를 포함해 여객기에 타고 있던 290명의 민간인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 부통령이자 대선 후보였던 조지 H.W. 부시는 1988년 8월 2일 공화당 지지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미국을 위해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팩트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 "I will never apologize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ver. I don't care what the facts are." (George H.W. Bush, Aug. 2, 1988)
※ 이 발언은 빈센스 사건 직후 나온 것으로 당시 언론(Newsweek, TIME)이 이란 항공 격추 사건과 연결해 보도했으나, 부시가 발언 중 격추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패권이라는 이름의 괴물과 2026년 이란 전쟁
가만히 뉴스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나는 깨달았다. 국익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는 수백 명의 무고한 목숨이나 명백한 팩트조차 얼마든지 외교적 지렛대나 핑계거리로 소모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지만, 패권을 잃는다는 것은 국가의 죽음과도 같기에 그들은 달러 패권이든 핵무력이든 군사력이든 기꺼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왔다. 2026년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발발한 미·이란 갈등과 경제적 제재의 본질 역시, 겉보기엔 항행의 자유를 외치지만 그 밑바닥에는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자국 내 정치·경제적 손익계산서가 치밀하게 깔려 있다.
지독하게 불편한 깨달음이었다. 미국 시민으로서 내가 누리는 이 안온한 일상과 풍요로움이, 어쩌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피와 눈물, 억눌린 권리 위에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미묘한 죄책감이 일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이 강력한 패권 국가의 든든한 군사력과 경제망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아이러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과 이란 관계의 진짜 역사를 마주하며, 나는 우리가 늘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뼈아픈 진실을 삼켜야 했다.
한국계 미국인의 시점, 그리고 또 다른 모국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사회를 살아가며, 나는 종종 완전한 주류가 되지 못한 채 미세한 차별과 유리천장을 경험하곤 했다. 백인 친구들에게 내 부모님의 나라 '한국'은 그저 북한과 맞닿아 있는 곳, 언제 핵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이 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나라, 즉 뉴스 속 한 줄짜리 텍스트에 불과했다.
그들의 무심하고도 단순한 시선을 겪으며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란도, 한국도, 심지어 미국조차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텔레비전 화면 속 평면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어떤 국가든 그 뻣뻣한 이름표 뒤에는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의 사연과 지워지지 않는 세대적 상처가 숨 쉬고 있었다. 오래된 중동의 역사와 최근 불거진 이란 전쟁의 향방을 파고들수록, 이 세계의 차가운 지정학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수많은 국가들의 민낯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묘하게도 나의 또 다른 조국, 한국의 지정학적 운명과도 닮아 있었다.
세계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언젠가 저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돌아가 살아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무렵, 나는 직감했다. 나에게 미국은 현재이지만, 한국은 아직 오지 않은 과거 같은 곳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어린 시절 뉴스 속 지도에 빨간 원으로 표시되던 그 위태로운 중동의 도시들 위로, 훗날 한국에서 보는 전쟁의 긴장감 속에서 내가 직접 발 딛고 살아갈 서울의 불빛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 라모나, 서울에서 (2편으로 계속)
※ 본 글은 한국계 미국인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 언급된 역사적 사실의 출처: 브리태니커(Britannica), CIA 공식 해제 문서(1953 이란 쿠데타), 미 해군 역사센터(NHHC), Wikiquote(부시 발언)
※ 이 글에 담긴 역사적 해석과 개인적 의견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특정 국가나 정부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