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나의 노트/에세이

[전쟁 에세이 2화] 미국 거실의 전쟁이 한국 냉장고 속으로 들어온 날

수석연구원 라모나 2026. 4. 20. 20:37

한국에서 직접 목격한 2026년 이란 전쟁의 여파. 유류 가격 상한제, KOSPI 역대 최대 낙폭, 페르시아만에 고립된 한국 선박 26척. 미국 거실에서 TV로 보던 전쟁이 한국 일상으로 들어온 날을 기록합니다.

서울 이란 전쟁 에세이 한국 에너지 위기 2026

"지정학은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유소 앞 긴 줄로, 마트 냉동고 빈 공간으로, 스마트폰 속 뉴스 속보로 내 삶에 들어온다."

 

 

2026년 2월 28일 새벽, 서울에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스마트폰에 속보 알림이 쏟아지고 있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라는 작전명 아래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개시했다. 군사 시설, 핵 시설, 이란 지도부를 겨냥한 정밀 타격이었다. 제네바 핵협상 결렬과 2025년 12일간의 공중 충돌이 쌓이고 쌓인 끝에 결국 터진 일이었다.

어린 시절 미국 거실 소파 끝에 앉아 피자를 먹으며 TV로 보던 그 전쟁이, 이제 내가 발 딛고 사는 대한민국의 새벽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뉴스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일인 것 같았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맞받아쳤다. 전 세계 원유의 약 20%,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통과하는 그 좁은 해협이 막혔다. 브렌트유는 2026년 3월 8일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4년 만의 일이었다.

 

숫자로 보는 한국의 충격 —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전쟁

한국 에너지 수입의존도 호르무즈 해협 의존성 데이터

한국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숫자가 말해준다.

항목 수치 출처
한국 에너지 수입의존도 94% CNBC / 한국에너지통계정보시스템
원유 중 호르무즈 해협 경유 비율 약 70% CSIS / KEI
KOSPI 하락 (개전 이틀) 43년 역사상 최대 낙폭 CSIS
원화 환율 17년 만의 최저 (약 1,500원/달러) The Diplomat
페르시아만 고립 한국 선박 26척 (유조선 17, 벌크선 5 등) CSIS
전략비축유 소진 가능 기간 약 26일 CSIS
추경 규모 26.2조 원 (약 171억 달러) CNBC

이 숫자들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손이 멈췄다. 한국이 이렇게나 취약한 나라였나. 에너지 수입의존도 94%라는 수치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는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피부로 닿았다.

💡 라모나의 관찰 : IEA(국제에너지기구)가 이번 사태를 "역사상 가장 큰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라고 규정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비교하는 분석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호르무즈에 촘촘하게 묶여 있었다.

 

주유소 앞에 선 사람들 — 30년 만의 유류 가격 상한제

전쟁이 터지고 며칠 후, 출근길에 주유소 앞에 차들이 길게 늘어선 것을 봤다. 뉴스에서 보던 장면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이었다.

한국 정부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유류 가격 상한제를 시행했다. 1997년 이후 처음이다. 공공부문 차량 홀짝제도 도입됐다. 정부는 국민에게 샤워 시간을 줄이고, 스마트폰을 낮에 충전하라고 권고했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우스운 소리처럼 들렸을 말들이 갑자기 현실적인 조언이 됐다.

한국은 IEA 차원의 비축유 방출에 2,250만 배럴을 기여하기로 했다. UAE로부터 원유 2,400만 배럴을 긴급 확보했다. 원자력 발전소 가동률을 80%까지 높이고, 폐지 예정이던 석탄화력발전소 2기의 가동 중단을 6개월 연장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졌다. 전쟁은 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기요금, 난방비, 장바구니 물가, 주식 계좌 — 내 삶의 모든 숫자에 스며들고 있었다.

 

반도체와 헬륨 — 전쟁이 스마트폰 공장까지 흔들 때

한국 반도체 공급망 이란 전쟁 헬륨 부족

에너지 위기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반도체 공장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한국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헬륨의 64.7%를 카타르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이란의 공습으로 세계 최대 LNG 생산 시설인 카타르 라스 라판(Ras Laffan) 공단이 가동을 멈췄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대체 불가능한 소재다. 개전 이후 헬륨 가격은 40% 이상 급등했다.

석유화학 공정의 핵심 원료인 납사(나프타)도 문제였다. 한국은 납사의 약 35%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한다. 정부는 납사를 즉각 '경제 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수출을 금지했다.

중동의 전쟁이 서울의 반도체 공장을 멈출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공급망의 취약성이고, 지정학의 현실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반도체 — 그 공급사슬의 한 고리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었다.

 

THAAD가 중동으로 떠난다는 소문

전쟁 초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나의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의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일부를 중동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보도였다.

사실이었다.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된 전략 자산의 일부를 이란과의 전쟁에 투입하면서, 한국 내에서는 '우리의 방어막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군사 전략의 문제가 아니었다. 북한의 존재를 항상 등에 지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군사력 재배치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어린 시절, 백인 친구들이 한국을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나라'라고 무심하게 말할 때마다 나는 불편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뉴스 속 한 줄짜리 텍스트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나는 그 무심한 시선의 절반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틀린 것은, 한국인들이 그 불안과 함께 너무나 평범하고 활기차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랐다는 점이다.

이란 전쟁이 터진 날 밤, 시내 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홍대 앞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편의점 삼각김밥은 평소대로 팔렸다. 위기를 체내화한 사람들의 삶은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미국 거실에서 보던 전쟁이 서울 일상이 된 날

2026년 4월 현재, 이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 중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유조선이 멈추고, 협상가들이 테이블에 앉는다.

나는 지금 서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고, 노트북 옆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엔 오늘도 호르무즈 속보가 올라온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 거실에서 TV로 보던 그 전쟁이, 이제 내 냉장고 속 식료품 가격으로, 주유소 앞 줄로, 주식 계좌 숫자로 들어와 있다. 이것이 지정학이다. 교과서 속의 개념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

어릴 적 나는 이란이 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의 나는 그 나라와 나 사이를 잇는 수많은 파이프라인이 보인다. 원유 파이프라인, 공급망 파이프라인, 군사 동맹의 파이프라인, 그리고 달러 패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이프라인까지.

그 연결을 이해하는 것이 두려움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소파 끝에 앉아 피자를 먹으며 화면 너머의 전쟁을 구경하던 그 아이보다는, 조금 더 선명하게 세계를 보게 해 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으로서는.

— 라모나, 서울에서 (3편으로 계속)

 


※ 본 글은 한국계 미국인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언급된 경제·외교 데이터는 2026년 4월 기준이며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참고 자료 : CSIS(전략국제연구소), CNBC, The Diplomat, KEI(미국 내 한국경제연구소), CNN, NPR, Wikipedia — 2026년 이란 전쟁 경제적 영향, 한국 에너지 위기 관련 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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