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나의 노트/에세이

[전쟁 에세이 3화] 서울의 봄, 그리고 끝나지 않는 것들

수석연구원 라모나 2026. 4. 25. 19:27

"휴전은 끝이 아니다. 전쟁이 숨을 고르는 것이다."

 

1. 협상 테이블 위의 침묵

2026년 4월, 미국과 이란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한다. "합의는 조만간 발표될 것이다. 협상이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란 국영 매체는 선을 긋는다. "아라그치 장관은 미국 측 관계자를 만날 계획이 없다."

두 나라가 각자의 메시지를 내보내는 방식이 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총이 아닌 말로 싸우는 것. 이 기싸움도 전쟁의 일부다.

호르무즈 해협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여전히 출렁인다. 서울 주유소 앞 줄은 조금 짧아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중동 뉴스를 확인한다. 이것이 일상이 됐다.

 

2. 서울의 봄은 조용하다

창밖에 벚꽃이 졌다. 서울의 봄은 언제나 이렇게 온다 — 전쟁이 벌어지든, 협상이 교착되든, 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봄은 사람들의 사정을 묻지 않는다.

홍대 앞 카페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태원 골목에는 새로 생긴 가게들이 있다. 한강변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펼친 사람들이 있고, 치킨을 시켜 먹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전쟁이 있었다고? 지금 이 장면만 보면 알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안다. 2월 28일 새벽, 나는 이 도시의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그 새벽의 무게가 지금의 이 봄 햇살과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이 도시를 이런 방식으로 살아간다. 위기와 일상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며. 불안을 삶의 배경음으로 두고서.

어렸을 때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을 '위험한 나라'라고 했을 때, 나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한국인들이 매일 감내하는 불안의 무게는, 감내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도시의 활력은 어떤 의미에서 그 불안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3. 휴전이라는 이름의 애매함

트럼프 대통령은 말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이란은 재건 중이다. 하메네이는 없다. 혁명수비대는 흔들렸다. 핵 협상은 진행 중이다. 모든 것이 '진행형'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휴전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애매함을 나는 안다. 한국에서 70년 넘게 살아온 말이다. 한국전쟁도 휴전이다. 끝나지 않은 채 멈춘 전쟁. 멈춘 것을 끝난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 이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잘 안다.

나는 가끔 이 도시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카페가 있고, 이렇게 많은 새벽이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혹시 이것도 일종의 생존 방식인 건 아닐까. 멈추지 않으면 무서운 것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4. 두 도시의 라모나, 그 사이

1화에서 나는 미국 거실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CNN에서 이란 뉴스가 나왔고, 나는 그것을 구경했다. 저 멀리 있는 전쟁이었다. 나는 관찰자였다.

2화에서 그 전쟁은 내 냉장고 속 물가가 됐다. 주유소 앞 줄이 됐다. 스마트폰 화면의 속보가 됐다. 나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럼 3화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두 나라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것은 한국계 미국인의 숙명 같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너무 한국인 같고, 한국에서는 너무 미국인 같다는 그 낡은 문장 말고. 더 정확하게는 이것이다 — 어느 한 나라의 언어로만 이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

미국에서 자라며 배운 것이 있다. 패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외교가 어떻게 포장되는지. 전쟁이 왜 멀게 보이는지. 그리고 서울에서 살며 배운 것이 있다. 지정학이 어떻게 밥상 위로 내려오는지. 에너지가 얼마나 가깝게 삶을 건드리는지. 안전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얇은 막인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는 것. 그것이 내가 두 도시 사이에서 얻은 것이다. 두렵지만 유용한 시선.

 

5. 협상이 타결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들

파키스탄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원하는 문서가 나올 수도 있다. 이란이 핵을 내려놓겠다는 서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전쟁은 끝나는가.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국의 에너지 의존도는 여전히 94%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여전히 70%에 달한다. 반도체 공급망은 여전히 중동을 지나간다. 협상 결과지 한 장이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더 끝나지 않는 것도 있다. 이 전쟁이 한국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는 사실. 그것을 한 번 본 사람은, 이전처럼 무심하게 뉴스를 스크롤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이란 소식을 볼 때마다 주유소 앞 줄과 냉장고 속 물가를 함께 생각한다.

지정학은 타이밍이 좋을 때만 교과서 속에 있다. 타이밍이 나쁠 때는 내 통장과 장바구니 속에 있다. 이란 전쟁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줬다.

 

6. 전쟁이 끝나는 방식

전쟁은 영화처럼 끝나지 않는다. 선명한 마지막 장면이 없다. 조금씩 소음이 줄어들고, 뉴스에서 비중이 줄어들고, 사람들의 대화에서 이름이 사라지고, 어느 날 보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세계를 바꿔놓은 채로 조용해진다. 이라크 전쟁이 그랬다. 아프가니스탄이 그랬다. 시리아가 그랬다. 전쟁이 끝나도 나라는 달라지고, 사람들은 달라지고, 세계의 구조는 달라진다.

이란도 그럴 것이다. 하메네이 이후의 이란이 어떤 나라가 될지, 중동의 세력 구도가 어떻게 재편될지, 호르무즈 해협의 지위가 어떻게 달라질지 — 그것이 앞으로 몇 년간 세계가 다루어야 할 질문들이다.

한국도 그 질문들에서 자유롭지 않다. 에너지 전환의 속도, 공급망 다변화의 방향, 중동 외교의 재설정 —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결정되고 있다.

 

7. 서울에서 쓰는 마지막 문장

창밖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노트북 옆에 식은 커피가 있다. 스마트폰에는 속보 알림이 와 있다. "미국-이란 2차 협상, 이번 주말 개최 가능성."

나는 알림을 잠시 바라보다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린 시절 미국 거실에서 피자를 먹으며 CNN을 봤다. 전쟁은 화면 안에 있었다. 나는 화면 밖에 있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세계는 미국 거실에서 구경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서울에 있다. 전쟁은 여전히 화면 안에 있지만, 나는 더 이상 화면 밖이 아니다. 이 도시의 물가와, 이 도시의 에너지와, 이 도시의 불안과 함께 안에 있다. 그것이 달라진 것이다.

이 전쟁이 나에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시선이다. 세계를 구경하지 않는 것.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두렵지만 더 정직한 시선.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이 시선을 잃고 싶지 않다.

— 라모나, 서울에서

 

※ 전쟁 에세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 본 글은 한국계 미국인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언급된 외교·군사 데이터는 2026년 4월 기준이며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참고 자료 : MBC뉴스, 파이낸셜뉴스, 머니투데이 (2026년 4월 24~25일 보도), 위키백과 2026년 이란 전쟁, 나무위키 미국-이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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